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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가을 부산 여행

3분기를 마무리하고, 원주와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육체를 하얗게 불태워 영혼을 가득 채웠다.

21.10.01

KTX & 잭 다니엘

부산행 KTX를 타자마자 내가 준비한 것은 술과 음악이었다. 에어팟을 귀에 꽂아넣고, 이 때 내가 강렬하게도 빠져 있었던 김봄소리의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으면서 힙 플라스크에 담아 온 잭 다니엘을 한 모금 마셨다. 거칠게 몰아치는 위스키의 향과, 황홀하게 울리는 클라이막스의 멜로디는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여행이 시작되었다.

광안리 도착

KTX에 내려 광안리행 버스를 타자, "어서오이소~"하는 기사님의 인사가 나를 반겨주었다. 뜻밖의 부산 냄새 물씬 풍기는 환대에 내 기분은 갑자기 끌어올려진다. 정말로 부산에 도착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2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달리니 광안리에 도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뚫고 태양빛이 모래사장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렇게 뜨겁게 달궈진 모래사장을 바닷물이 시원하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서울에 두고 온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흘러내리는 땀이 개운했다.

민락회센터 잿방어회 & 전어회

뜨거운 모래사장을 곧장 가로질러 회 센터로 향했다. 제철이라는 잿방어회와 전어회를 주문했다. 식당 창문 너머로 뜨거운 광안리 바닷가가 넓게 펼쳐져 있었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주변의 더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 준다. 에어팟을 빼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면 시간은 지루한 듯 느릿느릿 흘러간다. 그러고 있으면 테이블을 훈훈하게 데우고 있는 햇빛, 소리 없이 모래를 날름거리는 파도, 뜨거운 해변가를 가로지르는 사람들, 나의 음식을 주문하며 달그락거리는 주방의 소리같은 것들이 가득 들려온다. 그렇게 시간 감각이 없어질 무렵, 회 한 접시가 나왔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잿방어회를 한 점 집어 입에 넣고 씹어본다. 마치 햅쌀로 갓 지은 밥이라도 되는 것처럼 부드럽고, 쫄깃했다. 차지고 고소한 맛이 났다. 그 다음에는 전어를 두어 점 집어 먹었다. 이번에는 꼬들꼬들하면서도 단단했다. 잠시 멍해져있던 내 정신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었다!
아직까지도 생생하게 그려지는 이 첫 맛 이후로는 기억을 잃은 듯하다. 정신없이 회를 먹다가, 중간 중간 멍게와 낙지 탕탕이로 입가심을 하고, 청하로 입맛을 깨끗하게 씻어낸다. 어느새 한 접시가 말끔히 비워져있었다. 배부른 몸을 의자에 기대고 다시금 바다를 멍하니 바라본다. 나른하고, 느긋하고, 행복하다.

자쿠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물과 입욕제를 가득 채워넣은 자쿠지에 몸을 담갔다. 쏴아 하고 수도꼭지에서 물이 쏟아져나오는 소리만이 주변을 가득 채운다. 위스키를 한 모금 털어넣고, 시원한 물을 마신 후 턱끝까지 몸을 밀어넣는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나른하다.
그렇게 눈을 감고 한 시간 정도 잠에 들었다. 내가 낮잠을 청하거나 잠이 잘 오지 않을 때 종종 상상하는 순간이 있는데, 해가 채 지기 전의 오후 즈음에 낮잠에서 막 깨어 창문으로는 어렴풋한 햇빛이 스며들어오고, 밖에서는 초등학교 수업을 갓 마친 조무래기들이 놀이터에서 꺄르륵거리며 뛰어노는 소리가 꿈처럼 들려오는, 그런 순간이다. 꼭 그런 순간 같아 그렇게 몽롱한 채로 삼사십 분은 더 녹아있다가 나왔다.

고옥 히츠마부시

점심을 그렇게 먹어댔는데도 뭐가 또 그렇게 배가 고팠을까. 어쨌거나 저녁 시간이 되니 또 귀신같이 배가 고파오는 바람에 히츠마부시를 먹기 위해 숙소에서 15분 정도를 걸어 <고옥>에 들렀다.
음식을 시키고 10분 정도 기다리니 정갈하게 차려진 한 상이 나왔다. 벌써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모습이었다. 나는 마치 하루 정도는 족히 굶은 사람처럼 정신없이 먹어댔다.
입안 가득 고슬고슬한 밥알이 씹히며 달달한 소스의 맛과 향기가 퍼진다. 그 사이로 이 끝에 단단하게 씹히는 통통하고도 쫄깃한 장어가 씹힌다. 살짝 뿌려 비빈 육수에서 느껴지는 감칠맛이 이러한 맛들을 조화롭게 감싸준다. 내 생애 첫 히츠마부시는 성공적이었다.

광안리 밤바다

배를 가득 채우고, 별 생각 없이 한참을 걸어대다가 바닷가 앞에 앉아 멍을 때렸다. 앞뒤로 커플들이 휙휙 지나가고, 내 옆쪽에 자리를 잡은 두 여성분은 바닷가에 머물렀던 40분 내내 서로의, 그리고 스스로의 젊고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평선을 화려하게 수놓은 광안대교로부터 검고 묵직한 파도가 부질없이 밀려온다. 계속해서 홀짝거리던 위스키의 취김에 몽롱하여 팔을 베고 그대로 바닷가에 누워버린다. 축축하고 부드러운 모래가 팔과 등허리를 감싼다. 한 숨 한 숨이 마치 담배라도 피는 듯 늘어졌다. 참 여유롭다.

광안리 러닝

배가 좀 꺼지고 나자 숙소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다시금 나온다. 손목이 아파 할 수 있는 운동이 별로 없는 바람에 시작했던 러닝이 나의 중요한 취미 중 하나로 자리잡은 후부터, 꼭 한 번은 바닷가에서 뛰어보고 싶었다. 바닷바람까지는 모르겠지만, 시원하고 상쾌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주변은 이미 완전히 어두웠고, 사람들도 낮과는 다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시금 바닷가에 앉아 달아오른 몸을 조금 식힌다. 슬슬 원주가 기다려진다.

야식 - 자쿠지 & 육개장

내가 굳이 부산까지 와서 러닝을 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야식을 먹기 위함이었으리라. 숙소로 돌아와 땀을 씻어낸 후, 잭 다니엘을 다 비운 힙 플라스크에 라프로익을 채워넣고, 컵라면을 끓여 다시금 자쿠지에 몸을 담갔다. 맛있고, 배부르고, 등 따시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라프로익의 맛은 강렬했다. 피트향이 마치 오르가즘처럼 강하게 밀려왔다가, 오랫동안 일렁거리며 나의 혀와 코와 뇌를 간지럽힌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그 잔향을 가득 느끼고 있으면 꼭 향긋한 담배를 피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21.10.02

모닝 자쿠지

내가 꽤나 비싼 이 숙소를 예약한 이유는 단 하나, 자쿠지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쿠지에 물을 채우고, 몸을 지지면서 커피와 빵을 먹는다. 까마귀 하나가 날아와 처마에 앉길래 까악거리며 대화를 요청했는데, 한동안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날아가버렸다.

부산 도착

지하철을 타고 해운대에 도착했다. 햇빛은 잔인할 만큼 뜨거웠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방풍림의 커다란 돌을 옮겨서 나무 그늘에 깔고 앉아 물과 위스키를 홀짝거리면서 다음 호텔의 체크인 시간을 기다렸다. 살랑 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뜨거운 모래사장을 약올리기라도 하는 듯 시원하다.
날이 덥기는 더웠나본지, 지나가던 커플들이 나를 보고는 잠깐 부러워하다가도,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지나쳐가고는 했다.

오복돼지국밥

왜 자꾸 배가 고파지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또 슬슬 배가 고파지는 바람에 주변의 아무 돼지국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뜨거운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너무 맛있었다. 고소한 국물은 다대기를 먹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맛있었다. 중간 중간에 먹는 깍두기는 매콤달콤했다. 그냥... 다 너무 맛있었다. 덕분에 나는 답지 않게 공기밥 하나와 밑반찬을 깔끔하게도 비웠다.

해운대 물멍

숙소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낮잠을 청했다. 꽤 피곤했나보다. 사십여분을 자고 일어나니 온 몸이 물 먹은 솜마냥 무겁고 노곤했다. 가만히 누워 숨을 쉬면서 잠에 취한 느낌을 만끽한다. 낮잠에서 막 깨어 살짝 열이 오르고 몽롱한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이내 옷을 챙겨입고 술과 함께 바닷가로 나간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수평선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파도가 한 번씩 내 정강이를 훑어갈 때마다 내 발바닥이 더 깊숙이 모래바닥에 박혀들어간다. 한참을 수평선 한가운데서 그렇게 서 있으니 이 바닷가에 나만 있는 듯도 하고, 깊고 넓은 바다로 혼자 떠밀려온 듯도 했다. 그래서 주변을 바라보면 어린 아이와 부모들이 바다와, 혹은 모래와 사투를 하고 있다. 괜히 가족들에게 연락해본다.

원주를 기다리며

하늘은 금세 어두워졌다. 뚜렷한 경계도 없이 어느새 밤이 되었고, 바다는 술과 젊음에 취한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미 술판을 벌이고 있기도 하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기도 하다.
원주가 보고싶다. 슬슬 KTX를 타고 도착할 시간이 되었다. <옵스>에 가 빵을 조금 사고, 숙소로 돌아가 원주를 맞을 준비를 한다.

노량진에서 부산으로 출발

노량진에서 일을 마치고 6시 42분에 출발했다. 영등포역에서 7시 6분에 출발하는 KTX를 타려면 촉박하다고 느껴졌지만, 사전 조사에 의하면 늦을 확률은 희박했다.
나른한 저녁 노을이 1호선 위를 덮고 있었다. 지난 제주 비행기 회항으로 인한 건지 혹시라도 늦어서 KTX를 놓치거나 계획이 틀어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등을 덮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의 근무를 마치고 떠나는, 살짝 피로에 젖은 해방감은 이와 대조되게 심장을 뛰게 했다. 그렇게 등은 차고 가슴은 뜨거운,, 표현하기에 약간 어려운 기분으로 출발했다.

원주 도착 - 냉채족발 & 라프로익

내가 군인이었던 시절, 나의 생일이었던 주말에 외출을 나와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원주가 우리 집으로 찾아온 적이 있다. 뜬금없이 우리 집에 온다는 원주를 기다리다가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어벤저스 OST를 틀어놓고, 어벤저스 장식이 된 케이크를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더라ㅋㅋㅋ 그게 너무 어이없고 웃기고 반가워서 아직까지도 잊히질 않는다.
부산에서 원주를 기다리는 동안, 원주와의 여행에 대한 설렘을 적절히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다 이 때 이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드보르작의 9번, ‘신세계로부터’다. 음악을 클라이막스에 맞춰놓고 원주가 올 때만을 기다리다가 벨이 울린 순간 재생한다. “딴- 딴- 딴, 딴- 따단-”
음악, 친구, 라프로익, 냉채족발. 나의 육체와 영혼이 충만해지는 순간.
부산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해운대에 점점 다다랐을 때, 여행지로 혼자 오고있는 외로운 내 처지를 이전에 부산 여행에서 본, 조금은 알고있던 풍경들이 위로했다. 그리고 이 곳에 와 찬규와 물리적으로 가까워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을 차갑게 죄고 있던 철끈들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혼자 여행을 즐기는 찬규가 신기하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난 혼자 타지에 오는 게 외롭고 두려운 게 아닌가 싶었다.
숙소 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를 때 안에서는 음악이 들렸고, 문이 열리면서 찬규가 나를 그 음악과 함께 맞이했다. 먼 이웃나라의 사신이 도착할 때, 왜 그렇게 성대하게 맞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차갑고 차분한 바닥에 있던 내 텐션은 빠르게 가속하며 올라왔고, 짐을 풀고 냉채족발을 봤을 때 정상에 닿았다. 그리고 두 위스키를 한 곳에 모아놨을 때 '이 여행지에 찬규와 함께 왔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텐션은 하늘로 솟았다.
저녁을 굶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먹어봤다기에는 뭔가 익숙하지 않은 냉채족발은 맛있었다. 그리고 라프로익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스모키해서 놀랐다.
라프로익 쿼터캐스크 _ 입에 넣자마자 비강으로 강한 스모키향이 올라왔다. 이 향은 '이런게 위스키의 훈연향이구나'를 처음으로 알게 했고, 기대 이상의 향이었기에 당황스러웠다. 어느 정도 마시고 나니 금세 온 숨결에 그 향이 스며있었다. 그 향은 다음날 오전 내내 미세하게나마 계속 몸에 풍겼고, 그 부분에서 나와는 크게 맞지 않는 위스키임을 알 수 있었다.

해운대 밤바다

라프로익을 마시다보니 갑자기 또 밤바다가 보고 싶었나보다. 술기운을 가득 담고 밤바다에 도착한 우리는 바다에 뛰어들어 막무가내로 수영을 하고, 음악을 틀어놓고 정신나간 막춤을 춰댔다. ‘봄의 제전’에나 어울릴 법한, 몸부림에 가까운 춤들을.
사실 이 때는 나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숙소로 돌아오면서 찍은 동영상이 있는데, 우리 둘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사람을 찍은 듯 기억이 안 나더라.
술기운이 올라오니 바다가 보고 싶었고, 피로감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는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폭죽을 터트리며 바다에 뛰어들고, 정신 나간 듯 물에 빠져 수영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와서 이런 저런 노래들에 막춤을 췄다. 구체적인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그 때의 기분으로는 너무 즐거웠던,, 기분으로 남아있다. 라이터가 물을 먹고 맛탱이가 가서 지나가던 행인 2명과 옆에서 자리깔고 있던 일행들에게 불을 빌리려한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그 분들은 라이터가 없었다.) 떠올려보면 딱 봐도 엄청 취해보였을 텐데 조금은 민망하다.
술 안먹고 춰도 개판이지만 술 먹고 추는 춤은 정말 개판이다. 하지만 그 때 몸에서 털어지는 어떠한 것들은 확실히 내 인생에서 독이 되는 것들인 것 같다. 같이 막춤이라도 출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 날 밤 나는 필름이 풀어헤쳐진 덜그덕거리는 카메라처럼 잠들었다.

21.10.03

송정 해수욕장 #서피서피 - 서핑

이건 원주
이게 나
지난 제주 여행 때의 서핑이 정말 기분 좋았기에, 원주와 함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컨텐츠를 마련했다.
파도가 강하지 않아 강사님이 밀어주지 않고는 테이크오프를 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서핑 자체는 참 재밌었다. 나를 밀어주는 물의 느낌, 발바닥과 복근으로 서핑 보드를 느끼며 균형을 잡는 그 몰입감, 균형을 잡았을 때 비로소 나에 뺨에 불어오는 물방울 섞인 바람. 아, 시원하다.
원주는 항상 지방이고 근육이고 하나도 없어보이는 몸뚱이로 운동신경 하나는 괜찮은 편이다. 다른 사람들은 영 감을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그 해변가에서 딱 우리 둘만 테이크오프를 해내고 있는 사실이 퍽 기분 좋았다.
한 번은 파도가 불어올 때 우리 둘이 동시에 테이크오프를 했다. 파도를 따라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다보니, 우리 둘이 나란히 파도를 타고 있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뻗어 하이파이브를 하며 풍덩 하고 바다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그러나 마치 약속된 안무를 하듯 자연스럽게. 그 순간 바다에는 나와 원주, 우리 둘만이 존재했다.
아침에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고, 아, 찬규가 사온 왕슈크림빵 2개를 각각 한 입씩만 베어먹고! (나 혼자, 그래서 찬규한테 혼났다) 술에 덜 깬 채 송정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택시에 타서 가는 길에 달맞이길을 지났다. 택시 기사님은 이 길이 3, 4월에 벚꽃으로 가득하다며 다음에 여자친구랑 오라고 하셨다. 초록잎들이 뽀얗게 벚꽃으로 물들면 이 풍경이 어떻게 보일지 상상해봤다.
서핑은 찬규가 기획한 부산 여행의 일정 중 하나다. 나는 힘은 없어도 운동 신경은 있다고 약간은 자부하기에 나의 그런 운동신경을 테스트하겠다는 의지와 승부욕은 서핑을 꽤나 기대하게 만들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앞서 간단한 몸풀기, 강습을 받고 서핑보드 옆에서 사진도 찍었다. 모래 위에서부터 바다까지 가르쳐주시던 강사분에겐 오묘한 매력이 있었다. 상냥한 사람을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었다. 한시간 조금 되게 강사분께 보조받으며 강습을 받았고, 2시간 가량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 날의 파도는 서핑하기에는 좋은 컨디션이 아녔다고 한다. 하지만 수없이 거르고 거르며 선택한 파도 위를 미끄러지며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땐 정말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다. 패들링을 극혐하여 대충 파도의 힘으로 타는 나와는 달리 찬규의 패들링 가속은 파도타는 것보다 빨랐다. 찬규의 서핑 실력도 즐기기에 모자람이 없었기에 더욱 즐겁게 즐긴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첫 경험부터 쉽게 서핑을 탔고, 적어도 나에겐 어려운 종목이 아님을 알게 됐다.
파도는 아쉬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감질나게 탔고, 또 한 번 타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애석하게도 오늘보다 다음 날 파도가 아주 좋았다.) 다음 서핑도 찬규와 함께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서핑 슈트의 성능은 너무 좋아서 그 자체만으로도 사고 싶게 만들었다.

초원복국 복지리

처음 먹어본 복어 고기. 땀 뻘뻘 흘리면서 열심히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전 공복으로 파도를 탄 것이 어째 나의 축적된 칼로리를 소모한 느낌보단 영혼을 소비해서 탄 느낌이었다. 해수욕장 바로 앞에 붙어있는 작은 동네 슈퍼에서 콜라(찬규픽)와 식혜(나)를 사서 시원하게 들이키니 곧장 혈액에 당이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점심으로 뭘 먹을지 고민하던 우린 어쨋든 국물이 필요했고, 찬규는 이 참에 돼지국밥을 땡기자는 느낌이었지만 이상하게 내 몸은 해산물을 원하는 듯 했기에 국밥보단 해물탕쪽으로 어필해봤다. 그늘진 주차장에 앉아서 어떤 탕을 먹을지 고민한 결과 찬규의 추천으로 복지리를 먹자는 결론이 나왔고, 복지리는 처음 먹어보는 터라 바로 직행했다.
복요리라 엄청 비쌀 줄 알았는데, 한상차림이 아닌 예상보다 싼 1인 메뉴가 있었다. 나눠 먹을 생각으로 복매운탕과 복지리를 시켰다. 구체적으론 일반 복에 까치복이 하나 있었는데 별반 차이는 모르겠다. 복어의 식감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이걸 회로 먹는다면 먹어본 횟감 중 새로운 카테고리로 분류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는 다음 기회에! 경험으로 치자면 복어의 육질을 느끼게 된 것 자체로 좋긴 했다만, 매운탕과 지리 자체 국물의 깊은 맛은 없었기에 복어탕 자체는 아쉬웠다. 복어탕을 싸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맛있는 복어를 갖고 미나리와 숙주나물만으로 국물을 냈다는 아쉬움은 오리온이 허리띠를 두를 듯 말 듯 희미한 별점만을 마음에 남기게 했다. 다른 해물들을 첨가해서 해물탕처럼 나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뭐 그럼 복어가 주인공이 아닐 수도 있겠다만, 여튼 복어탕 자체의 맛에 빠져들기 보단 복어의 독이 더 궁금해졌던 점심 식사의 마무리였다. 찬규도 꽤나 궁금했는지 서로 검색해서 한동안 읽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서 간식을 샀고, 나는 뭔가 아쉬운 속을 육포로 채웠다.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로 클래식 곡을 틀었는데, 별 생각없이 봤다만 기억에 남는 건 정말.. 잘 친다.. 하는 경외감이었다. 막 육포 뜯다가 기절했는데 육포를 얼마나 소금으로 절였는지 자고 깼을 때 온 몸의 세포가 소금기에 비명을 질렀다. 물을 계속 마셨는데 쉽게 빠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밤바다 & 돌돔 & 부쉬밀스

지난 제주도 이후에 모래판에서 회와 술을 먹는 게 약간 약속처럼 되었다. 돌돔을 사서 달달한 부쉬밀즈 10년산과 함께 먹었다.
육포 소금기에 절어 깬 낮잠은 술에 쩐 잠보다 쓴 맛이었다. 찬규와 느긋하게 뒤척이며 저녁 메뉴를 골랐다. 이것저것 돌리다가 돌돔이 보였는데, 나도 돌돔은 안 먹어본 것도 있고 그마저도 여행와서 사치 부릴 때 아니면 언제 먹겠냐 싶어서 횟감의 황제 돌돔을 저녁 메뉴로 정했다.
해운대 모래사장을 우리의 저녁상 삼아 음식을 깔았다. 이 저녁 자리에는 어이없는 개그포인트가 몇 개 있는데, 그 시작은 젓가락이었다. 양주 먹을 때 느낌 좀 내겠다고 서울 집부터 온더락잔은 가져와놓고 음식 집어먹을 나무젓가락은 없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고급 횟감 돌돔의 개시는 검지엄지 손가락 집게였다. 돌돔의 맛은 사실 엄청나다기보단 잡내 없는 담백함과 탱글탱글한 살결의 정석이었다. 그렇다 해서 값을 못한다는 후기는 아니다, 뭐랄까. 이 느낌은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최상급 브랜드의 제일 포멀한 정장 셋업이랄까? 과하게 꾸민 맛도 아니고, 기본의 기본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그런 완벽한 무던함이었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점은 회가 좀 더 두껍게 썰렸다면 이 탱글함의 식감을 제대로 느끼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부쉬밀스는 차분하게 마실 때 끝맛에 아메리카노 향이 났지만 온더락잔에 시원하게 들이키니 그 끝맛은 흐려지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입맛에 완벽히 들어맞았다. 내 최애 위스키 탄생이다. 여기서 개그포인트 하나가 더 있는데, 잔을 치자니 가운데 돌돔으로 잔에 묻은 모래가 떨어져 모래볶음이 될 것 같고, 안 치자니 온더락잔 가져온 분위기가 안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린 마치 비행기가 소음공해 때문에 주거밀집지역을 피해 날 듯 음식 위를 빙빙돌아 상냥하게 잔을 쳤다.
음식을 대충 정리하고 스파클링과 분수 폭죽 몇 개 터뜨렸다. 단속반이 호루라기를 부는 바람에 약간의 초 침이 있었으나, 두고 보자. 돌돔은 맛있었으나 우리의 배까진 채워주지 못했고, 찬규가 후라이드 치킨 얘기를 하기 10분 전부터 나도 후라이드 치킨 생각을 했기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 치킨을 먹기로 했다.

야식 1 - 후참잘

후라이드 치킨이 갑자기 먹고 싶어서 시켜먹었다. 너무 배불렀던 기억이 난다.
한국은 배달의 민족이기 전에 치킨의 민족이었다. 역시 빠른 치킨 배달! 남은 부쉬밀스와 맥주를 곁들여 먹는 치킨은 솔직히 돌돔보다 맛있었다. 이번 여행의 먹부림은 이 시점에서 이미 별 다섯개를 채웠다. 해산물과 치킨은 은근히 궁합이 좋다. 다만 같이 먹는 궁합이 아니라 한 쪽으로 편향됐을 때 오히려 반대의 맛이 극락이 되는 현상이다. 찬규도 정말 맛있게 먹었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먹으니 생각보다 빠르게 치킨을 삭제시켰다. 그럼 배도 채웠겠다. 출발해야지.

마지막 입수

사실 우리는 반쯤은 기대하면서도, 반쯤은 걱정하고 있었다. 강렬하고 행복했던 지난 제주도 여행의 기억이 채 가시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 여행도 저번처럼 재밌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나를 따라다녔다.
지난번과는 다르게 단속팀이 바닷가를 가로지르며 폭죽 놀이를 단속하고 있더라. 실시간으로 폭죽 놀이를 하던 몇몇 팀이 적발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건 어떻게 폭죽을 터뜨릴 것인가? 그 이후에 잡히든 말든 그건 뭐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적당히 폭죽을 태우고, 동영상도 찍고, 불을 붙인 폭죽을 들고 돌리기도 하며 불꽃 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술을 마셔버린 바람에 소변이 마려우면 이미 충분히 따뜻한 여름 바다에 원주와 나란히 서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조금의 온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런데, 우리 머릿속엔, 아니 적어도 내 머릿속엔 뭔가 갈증이 있었다. “아 이게 아닌데…”
마지막 폭죽이 남은 순간 우리는 무언가를 직감한 것 같다. 마치 무언가의 계시를 받은 듯,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불이 붙은 폭죽을 들고 바다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원주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는지, 내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폭죽이 세 개 남았기에 나는 양 손에 폭죽을 들고 미친놈처럼 휘저으며 달렸다.
그러다가 휘청, 하는 순간 내 코는 바닷물에 박혀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리며 양 손을 휘젓는데만 집중하다보니 균형을 잃고 바다에 넘어져 빠져버렸다! 그 순간 바다에 빠진 폭죽을 일단 빨리 건져내야겠다는 생각에 팔부터 하늘로 치켜들며 일어났다. 일어나고 나서야 ‘아 불 꺼졌겠네…’ 하고 실망하고 있었다. 마지막 폭죽이었는데.
그런데 ‘치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정말 그 소리가 들렸다) 불꽃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마치 시련을 이겨내고 타오르는 꺼지지 않는 성화처럼 나의 폭죽이 다시 타오르고 있었다! 나는 신이 나서 더 미쳐 날뛰며 (영상을 보면 실제로 더 높이 뛰기 시작한다) 웃기 시작했고, 원주도 어이가 없는지 막 웃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외국인 여행객들도 미쳐 웃고 있더라.
아— 이 순간이 나에게는 왜 그렇게도 우습고 행복할까? 무엇을 갈망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무엇을 위해 발악하듯 바다에 뛰어든 우리. 뭐 어떻게 하자는 말 없이 그저 직감처럼, 공명하듯 동시에 까만 바다를 향해 달려나간 우리들. 바닷물을 한가득 삼키고도 일어나 다시 타오르는 나의 폭죽. 미적지근한 공기를 뿌리치고 바다의 몸을 내던진 채 흔들리며 낄낄 웃어대던 그 순간. 이 모습을 지켜보며 박장대소하던 여행객들이 마치 우리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듯한 이 감각.
인생이라는 장식장 한 켠에 고이 앉아 언제든 꺼내어 ‘이건 나의 가장 소중한 것들 중 하나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기억. 다시 마주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충분한 그런.
저번 제주도에서 불꽃놀이는 그 여행의 정점을 찍는 발화점이자 순식간에 사라진 불꽃이었다. 저번에 해봤다고 질려하기엔 아직은 부족한 느낌, 그리고 다시 느끼고 싶은 그 분위기. 서울부터 챙겨온 폭죽을 꺼내 바다로 갔다. 대충 파악하니 단속팀은 1팀, 그마저도 10시가 넘어가니 트랙터가 아닌 보행 단속이었다. 해운대는 양쪽으로 넓었고, 우린 해운대 서쪽 끝이었으며, 공기는 맑았다. 단속반의 경광봉은 해운대 끝쪽에 가도 잘 보였기에 맵리딩만 조금 하면 불꽃놀이를 즐기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우린 불을 붙이고 바다에 뛰어들고 꺼져가는 불꽃을 바다 멀리 던지며 놀았다. 물론 그 마무리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서로를 바라보며 아랫배가 따뜻해지는 기현상(?)으로 장식됐다. 이런 놀이를 몇 번 반복하니 폭죽은 점점 동이 났고, 마지막 남은 분수를 들고 있는 힘껏 바다에 달려들기로,, 한 적은 없지만 어째 우린 당연하단 듯 전력으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위 영상 참조) 바다로 뛰어가면서 본능적으로 물의 저항과 그로 인한 상하체의 변속에 밸런스가 깨져 물 속으로 쳐박힐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나는 혹시 넘어져서 불꽃이 물 속에서 꺼질까 염려하며 감속과 동시에 들고 있는 분수를 높게 들고 반대 팔로 바닥을 짚어 불을 살렸다. 그러고 옆을 보니까 찬규는 무지성 전력 돌진을 하고, 결국 머리 끝까지 물에 쳐박히는 것 아닌가. 아이쿠 아까운 불! 하는 생각이 0.2초 정도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부수는 찬규의 승천! 양손의 불꽃이 해수면을 뚫고 나오는데 마치 분노한 포세이돈이 물이 아닌 불을 들고 온 모양새였다. 이런 저런 생각이 들기도 전에 그냥 그 모습이 허당 같으면서도 존나 멋져가지고 너무 웃겼다. 그걸 구경하던 해변가 여행객들도 박장대소하며 우리의 발악을 관람했다.
분수를 들고 앞으로 전진하는 그 기분은 정말 오묘했다. 나는 물이 무섭고, 그 중 어두컴컴한 밤의 물은 정말 무섭다. 하지만 불꽃을 들고 물을 뚫으며 전진할 땐 마치 프랑스 혁명군을 이끄는 깃발을 든 자유의 여신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두렵지만 멈출 수 없고 멈추고 싶지도 않은, 두려움과 흥분감 사이 심장의 요동, 이게 살아있는 기분이 아닐까 지금 생각한다. 나를 살아있게 하는 순간이었구나 싶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찬규와 릴스를 찍어봤다.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기억이 안나 헤맸다. 이상하게도 찬규가 잘 찾아와서 할 수 있었다. 리쓴투미나우~ 띵띵띵띵띵~ 하다보니 요령이 생기고 테스트로 몇 개 찍어보고, 진심으로 몇 개 찍어봤다. 결론은 테스트 해본 게 제일 잘 나왔다. 완전함은 원하던 타이밍에 잘 나오지 않는 법.

야식 2 - 컵라면

그 지랄을 하고 나니 그새 소화가 되어 또 배고팠나보다. 갑자기 라면을 사서 과자와 함께 직어먹고는 잠에 들었다.
아니 뭔 계속 뭔갈 쳐먹어! 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 여행 일지다. 아무래도 물에서 뛰고 활동적으로 움직이다보니 전신의 세포가 칼로리를 부르는 것 아니었을까? 홈런볼을 던져서 먹는 대수롭지 않은 묘기 속에 우리집에 흩뿌리던 뻥튀기가 생각나서 찬규 얼굴에 홈런볼을 던지고 싶었지만 오늘은 우리 집이 아니니 나도 열심히 던져본다. 다음 날 바닥에 있는 양말을 신으려는데 옆에 떨어져있는 홈런볼이 어제의 책갈피로 남아있었다.

21.10.04

밀양순대돼지국밥

원주랑 여행을 하면 힙 플라스크에 위스키를 넣어두고 매 순간 홀짝거리고 다니는데, 덕분에 취하지 않은 순간이 전혀 없는 편이다. 아침 역시 다르지 않다. 다 마셔버린 부쉬밀즈 10년산의 술기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채, 그럼에도 배는 고팠는지 돼지국밥을 먹었다. 술기운에 마비된 혀 때문에 딱히 맛이 느껴지진 않았다.
축 늘어진 몸으로 일어난 아침. 전날 그렇게 쳐먹고도 어찌 이리 배가 고플 수 있을까? 인간의 몸은, 특히 나의 몸은 정말 블랙홀이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는 그 열량들 살이라도 돼 주던가.. 찬규의 추천으로 간 곳은 줄이 있었는데 다음 낚시 일정 때문에 기다릴 수 없었기에 가까운 곳에 돼지국밥집으로 갔다. 사실 뭘 먹든 맛있게 먹을 준비는 돼있었다만, 국밥은 앵간해서는 맛없게 먹기 힘든 법. 따끈한 국밥을 식혀가며 빠르게 해치웠다.

선상 낚시 - 참돔 & 전갱이

내 생애 첫 낚시. 하나도 못 낚을 것을 각오하고 있었는데, 내가 생각보다 재능이 있다보다. 전갱이를 무슨 열댓마리는 잡아올렸다. 그 전갱이는 집에 가져가 가족이랑 같이 구워도 먹고 튀겨도 먹고 탕으로도 맛있게 먹었다~
첫 한 시간 정도는 괜찮았는데, 숙취 때문인지 갑자기 배멀미가 밀려오더라. 그러는 와중에도 계속 전갱이는 입질이 와대니 꾸역꾸역 참으며 전갱이를 낚아올렸다. 전갱이를 낚아올리면 어디선가 바람이 빠지는 듯 “삐이—”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게 귀엽고 안쓰럽더라.
그러다가 결국 배멀미에 뻗어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로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저 선장님이 나를 다시 육지에 데려다주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주꾸미 낚시는 거의 열 번 넘게 갔지만, 물고기 대상 배낚시는 나도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이전에 갔던 배낚시는 서해 한 번, 제주도 한 번 이었는데. 서해 낚시는 어장이 화려하지 못해 큰 재미를 못 봤고, 제주도 낚시는 애초에 낚시 초보를 위한 체험이라 작은 전갱이가 대상 어종이었다. 그래서 제주도 배낚시도 손맛이고 뭐고 큰 재미는 없었다. 한반도 낚시의 황금어장은 남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이번 가을에 낚시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남해 낚시를 예정해놓고 있었는데, 더 나중에 잡은 찬규 여행 일정이 남해 첫 출항을 가로챘다.
출항 전 시원하게 속을 비우고, 가벼운 몸으로 배에 올랐다. 부두를 벗어나니 강한 파도가 배의 고도를 조율했다. 갑자기 떠오르는 악몽. 이와 비슷한 통통배에서 애니타임 사탕을 양껏 먹고 그대로 온바다에 민트를 토해내던 어린 시절의 배멀미. 그 때와 비슷하게 파도는 내 발목을 잡으려 성실하게 손을 뻗었고, 바람은 옷깃 사이로 내 멱살을 간지럽혔다. 하지만 배 경험이 많았던 탓인지 규칙적인 척 기민한 변수로 달팽이관 회로를 어지럽히는 이 파도를 내 몸에 최적화 패치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강한 파도 탓인지 선장님은 포인트를 잡는데 꽤 난항을 보였고, 그에 따라 약간 신경질적인 느낌이었다. 선장님의 대우에 기분이 살짝 안 좋을 뻔 했다가도, 이런 거친 바다 위에 발을 얹고 모든 것을 받아내고 인내하며 길을 찾고 닻을 내려 흐름에 동화시키는 모습에 인간적인 존경스러움이 생기는 듯 했다. 어렵사리 자리를 잡고 낚시를 시작한다.
생각의 브레이크 페달 위에 작은 돌을 올려놓는다. 그 돌은 구르기도 하고, 초마다 변하는 중력에 의해 떴다가도 눌리길 반복한다. 그 리듬에 맞춰 악셀을 밟을 필요는 없다. 움직일 필요가 없는 것, 내 주변 모든 것이 기운생동하여도 흐름을 부드럽게 받아내며 한 자리에 깊고도 깊게 묶여있는 것, 그것이 낚시다! 그렇게 파도의 흐름에 완전히 적응했을 때 부턴가 참돔이 계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찌된 일인지 나에게만 자꾸 올라왔다. 뒷자리 아저씨는 자리가 좋다는 둥 그 자리에서 해봐도 되겠냐며 질투하기도 했다. 그러지마라,, 그대가 낚시를 못 하는 것이다.
용왕님은 나에게만 참돔을 던져주고 나머지는 전갱이만 무수히 올려주셨다. 전갱이의 지루함을 느끼던 참에 찬규의 표정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그는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모양. 안타깝기도 했지만 사실 은근 즐거웠다. 그래 너가 오늘 하필 이런 파도를 맞아 새로운 경험을 하는구나. 맘껏 괴로워해라! 그것도 바다가 주는 선물이다. 깔깔. 깊고도 복잡한 생각에 잠겨 고독하고도 진득한 고뇌에 빠진 듯 보이는 찬규의 좌상. 은 개뿔 그냥 뒤질 것 같으니 아무 생각도 없이 끄윽끄윽 하고 있는 것이다. ㅋㅋㅋㅋㅋ 찬규의 약한 모습. 어쩌면 바다 위는 나의 영역인가 싶다. 디버프 걸린 찬규를 이길 수 있는 때는 지금일지도..?
알차게 즐긴 후 낚시 채비를 정리해 귀항을 기다리고 있다. 기울어진 해는 주황빛으로 수평선을 친다. 거친 파도를 LP판 삼아 수놓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다.

참돔회 & 전갱이 구이

육지에 오르니 놀랍게도 배멀미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근데 갑자기 아빠한테 엄마가 어지럼증에 아파서 누워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멀미로 나빠진 컨디션 때문인지, 숙취 때문인지, 갑자기 걱정이 되며 기분이 다운되더라.
근데 참돔회랑 전갱이구이는 진짜 맛있었다.
내가 잡고 내가 먹는 자급자족의 수확물은 참으로 놀라운 성취감을 준다. 잡은 참돔 5마리 중 큰 놈 2마리를 회쳐서 먹고 전갱이는 구이를 하여 먹었다. 아주 지멋대로 나가떨어진 억근의 몸을 겨우 세워 맛을 보고 소주 한 잔 들이킨다. 맛있다. 그 이상의 생각은 없었다. 미식을 앞세우기엔 우리의 몸은 생존 본능의 날을 세워 겁박했다. 가까스로 기력의 빛이 살짝 들어올 때 그 힘으로 바로 앞 부두에 나가 담배를 핀다. 호흡, 그리곤 살아있음을 맘껏 누렸다.
찬규 어머니의 건강 소식에 찬규의 마음은 아직 거친 바다 위에서 귀항하지 못한 듯 하다. 그 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부두 코 앞 바다에서 서성인다.

해운대 모래사장 낮(?)잠

이제 남은 일은 서울로 되돌아가기 위해 KTX를 타러 가는 것뿐. 근데 뭘 더 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고, 또 바로 가기에는 애매하게 시간이 뜨더라. 우리는 대충 걷다가 무작정 해변가에 누웠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누가 누구를 깨웠는지 모르겠지만, 비슷한 순간에 우리는 깬 것 같다. 초등학생 시절, 수요일 단축 수업을 마치고 오후 시간대에 집에 들어가면 낮잠을 자곤 했다. 그러다보면 운동장에서 어린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 도로의 차 소리, 새 소리 등이 나를 깨운다. 이번에는 파도소리가 개운해진 나를 깨웠다.
KTX 탑승 시간까지 애매하게 시간이 남았다. 여행 간 항상 뭘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시간과 피로에 저항하던 우린 순순히 백기를 들었다. 뭘 할 수는 없다. 찬규도 지쳐보였고, 그보다 중요한 건 내 발이 정말 극한의 고통을 격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해운대 모래사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있는 사람이 보였고, 우리도 곧 그렇게 됐다. 차가운 해변의 바람을 이불 삼아 잠시 단잠을 청했다.

서울 도착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둘도 없는 나의 친구 원주와 함께 한 행복한 여행이었다. 이 기억이 나의 미래를 지탱해줄 것이다. 아래 나의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독후감 중 일부를 인용하며 여행기를 마친다.
내게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서로의 영혼을 나누던 원주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애초에 너와 나는 거의 모든 면에서 대비된다. 너는 자유를 추구하지만, 나는 질서와 정돈을 추구한다. 너는 매 순간을 불태우는 폭죽이지만, 나는 어떤 순간을 대비하고 기다리는 바위이다. 영혼과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너와 달리, 나는 육체를 단련하고, 정신을 채찍질한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지는 않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동경한다. 너의 화려한 삶을 지켜보고 있으면 내 삶이 무채색이 되고, 세상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너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날,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네가, 나를 만나 비로소 삶에 색채를 얻게 되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때 나는 생각했다. 나의 색깔을 알아보고, 누구보다 잘 말해줄 수 있는 존재는 내가 아니라 너라고. 거울처럼 서로를 반대로 비추고 있는 우리는 함께 있을 때에야 알록달록한 삶을 그려내리라고.
내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 쉽지 않은 건 항상 같은 자리에 있었고, 맘 속 가득한 진실을 느끼며 내 안에서 믿음을 찾았어. 할 수 있는 마음 변치 않는 모습 그렇게 난 큰 빛을 얻었고, 맘 속 가득한 행복을 느끼며, 항상 새롭게 내가 못 다한 꿈을 이룬다면 그건 또 다른 나란 걸. 절망할 순 없는, 구속 받지 않을 삶이라는 것. 행복한 너의 모습. 이 넓은 세상을 느끼는 강한 내 모습. 서태지_take five 中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