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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Created
2021/01/17 08:58
Author
Somerset Maug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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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오.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아름다운 작품 속에는 늘 무언가의 화신이 있다. 정확히 무엇의 화신이라고 표현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지만, 내가 보고 감탄한 책에는 늘 그러한 화신이 있어, 어떠한 추상적인 관념을 꿈 속에서 직접 대면하고 온 듯한 경외심을 느끼게 해 준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나에게 그러한 작품들 중 하나이다.
찰스 스트릭랜드는 달의 화신이다. 증권 거래소에서 안락하고 풍족한 삶을 누리던 그는 불현듯 - 마치 악마에게 사로잡힌 듯 - 모든 삶을 내팽개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우주와 삶의 진리에 대한 어떠한 강한 암시를 받았지만, 그 것을 표현해낼 길이 없어 고통받는 사람처럼 그림에 몰두한다. 그 암시가 너무나도 인상적이고 강력하여, 그는 풍요, 안락, 이런 세속적인 것들에는 관심을 줄 여력이 없는 듯하다.
그가 보았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그가 무언가 보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가 보았던 것이 바로 삶의 어떠한 진리였을 것이며, 그것을 표현하며 고통받는 그 과정이 바로 그 진리를 실현하는 일이었으리라. 느지막한 나이에 삶이라는 바다에 빠져버린 그는 그저 살기 위한 몸부림을 했을 뿐이다.
여기서 '달'과 '6펜스' 사이의 대조가 눈에 들어온다. ‘달’은 예술가의 이상이자 예술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과 열정을, ‘6펜스’ 삶의 안락함, 혹은 현실적인 조건을 의미한다. 서머싯 몸은 시종일관 스트릭랜드의 입을 빌려 평범함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세속의 삶에 냉소를 던진다. 더크 스트로프는 예술이란 "예술가가 온갖 영혼의 고통을 겪어가면서 이 세상의 혼돈에서 만들어내는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라고 말한다. '달'의 세계에서 삶은 마치 하나의 캔버스가 되어, 삶 그 자체를 표현해내는 매개체가 된다. 모두의 삶이 하나의 작품인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어떤 작품일까. <달과 6펜스>를 읽고, 찰스 스트릭랜드의 삶을 보고 있으면 나도 달의 세계에 들어와있는 듯하다. 나의 삶도 무언가를 표현해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에 설레며 내 가슴 속의 달을 찾곤 한다. 혹은 나의 삶과 이 고통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생각에 안도한다.
폴 고갱을 모티프로 한 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삶과 예술성에 대한 강한 영감을 주는 것 같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세상의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은 달라보인다.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Paul Gauguin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