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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Created
2022/08/13 08:56
Author
Milan Kund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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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무의미하고 보잘것없는 것에 대한 찬가” 정도가 될 것 같다. 무질서하게 전개되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 속에서 농담과 진실, 탁월함과 보잘것없음, 역사와 인형극, 생명과 죽음이 대비되다가, 그 경계가 흐릿해지고, 결국은 이 모든것이 동등해지고 - 무의미해지고 - 만다.

농담과 진실

소설에서는 크게 세 가지의 농담이 등장한다.
가장 먼저, 암에 대한 음성 판정을 받은 직후 다르델로는 “자기 안에 깃든 죽음의 비애, 그 비애를 품고 있는 달콤한 기분”을 위해 라몽에게 암으로 인한 시한부 신세라는 농담(혹은 거짓말)을 한다. 이로 인해 라몽은 시한부 신세임에도 태연한 척 밝은 모습을 보이는 다르델로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또 스탈린은 그의 동료들에게, 가지에 스물네 마리 자고새가 앉아있었는데, 탄창이 열두 개밖에 없어 열두 마리를 먼저 죽이고, 왕복 26킬로미터의 거리를 가로질러 탄창을 챙겨 와 나머지 열두 마리를 죽였더라는 농담을 한다. 이를 들은 스탈린의 동료들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분개한다.
마지막으로 칼리방은 다르델로의 칵테일 파티에서, 그가 프랑스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파키스탄인이라는 농담을 말도 안 되는 파키스탄어를 꾸며내면서까지 한다. 다르델로네 가정부 마리아나는 이러한 파키스탄인 칼리방에게 반하고 만다.
이러한 세 가지의 농담은 모두 딱히 아무런 진지한 의미도 없고, 딱히 큰 영향도 없지만, 오히려 그로 인해 상대방이 농담과 진실을 구별하지 못하게 만든다. 농담의 피해자들은 깜빡 속고 말지만, 그렇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농담이 무의미한 것만큼, 현실도 무의미하다.

탁월함과 보잘것없음

또 이 소설에서는 탁월함과 보잘것없음에 대한 대비가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뛰어난 외모에 달변가인 다르델로는 쉴 새 없이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그 옆에는 끊임없이 뭐라고 중얼거리지만, 놀라울 만큼 아무에게도 주의를 끌지 못하는 카클리크가 있다. 다르델로는 어떤 한 여인에게 호감을 갖고 다가가지만, 그 여인은 결국 카클리크와 함께 떠나고 만다. 이에 대해 라몽은 “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되지만,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준다”며, 뛰어난 것이 오히려 “해롭다”고 말한다.
위대한(?) 지도자였던 스탈린과, 전립샘 비대증으로 시도때도 없이 - 공식 오찬 중에도, 연설을 하다가도 - 변의를 참지 못하는 칼리닌은 각각 각자의 이름을 딴 도시를 갖게 된다. 스탈린그라드와 칼리닌그라드. 하지만 스탈린그라드는 결국 지금은 “볼고그라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지만, 칼리닌그라드만이 여태까지 “칼리닌그라드” 그대로 불리고 있다. 탁월했던 스탈린과 보잘것없던 칼리닌은 결국 모두 죽어 한낱 인형극이 되었지만, 계속해서 그 이름이 불리고 있는 것은 결국 보잘것없는 칼리닌인 것이다.

역사와 인형극

“시간은 흘러가. 시간 덕분에 우선 우리는 살아 있지. 비난받고, 심판받고 한다는 말이야. 그다음 우리는 죽고, 우리를 알았던 이들과 더불어 몇 해 더 머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죽은 사람들은 죽은 지 오래된 자들이 돼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완전히 무로 사라져 버리는 거야. 아주 드물게 몇 사람만이 이름을 남겨 기억되지만 진정한 증인도 없고 실제 기억도 없어서 인형이 되어 버려.”
시대를 뒤흔들던 사회주의의 역사마저도 결국 시간이 지나 한낱 인형극으로 재현된다. 작품 내내 무거운 분위기를 풍기던 스탈린과 그 동료의 이야기마저도, 결국은 인형극으로 끝이 난다.

생명과 죽음

“누군가를, 태어나게 해 달라고 하지도 않은 누군가를 세상에 내보낸다는 게 나한테는 늘 끔찍해 보였다.”
아이를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 두려워 강에 투신했던 알랭의 어머니는, 그를 구하러 뛰어든 한 청년을 도리어 죽이고는 무사히 물에 빠져나와 강한 생명에의 의지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알랭이 탄생한다. 물론 이 일화는 알랭의 몽상이며 하나의 농담일 - 그러나 현실이 되어도 무방한 - 뿐이다.
사실 밀란 쿤데라는 이러한 이야기의 중후반부에, 대놓고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드러낸다. “우리가 보는 세계 뒤에는 어떠한 실재도 없다, 이 표상을 존재하게 하려면, 그것이 실재가 되게 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의 모든 실재와 의미를 무너뜨리고, 그 폐허 속에서야 찾아내는 자유와 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존재의 의미.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