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싯다르타를 읽으며 참 깊은 감명을 받았다.
저녁 점호를 마치고 (당시 군인이었다) 취침 시간이 되기 전에 독서실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명상을 하듯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상쾌해졌더랬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금욕적이고 사색적인 삶을 살다가,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며 속세에 뛰어들어 그 쾌락을 여한없이 맛본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환멸을 느끼고는 뱃사공의 옆에서 구도한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겪으며 괴로워하다가,
강의 이야기를 통해 존재를, 관계를, 세상을 이해한다.
참 낭만있지 아니한가
모든 것이 동일해서 허무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똑같이 생명력과 가능성으로 넘쳐나는 것이었다니.
하지만 이런 꿈을 꾸기에 지금의 내 세상은 너무도 좁아져 있던 것일까…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