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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Created
2020/12/26 05:54
Author
Nikos Kazantza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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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를 두 번째로 읽었다. 유럽 여행에 책을 가져가 읽기 시작했는데, 천천히 천천히 읽다가 이제야 끝을 내었다. 마치 성경책을 읽어내듯, 자기 전에 30~40분씩 나의 성령을 채워 주던 그러한 책이다. 다시 읽어도 참 아름답다.
'나'는 철학과 금욕을 좇는 불교 신자이다. 그에게 삶은 불시착한 미로와도 같았고, 그렇기에 죽음, 삶, 소명과 같은 것들에 늘 고뇌하며 세상과 멀어지려 했다. 부처는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미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고 진리였다.
하지만 우연찮게도 '나'는 조르바를 만난다. 조르바에게 있어서 삶은 그저 삶 그 자체였다. 그는 닥치는 대로 삶을 살아간다. 일을 할 때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고, 밥을 먹을 때는 밥만을 생각해야 하며, 사랑을 할 때는 사랑만을 해야 한다. 마치 대지에서 갓 태어난 존재처럼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거침없는 그는 사랑을 하며, 전쟁을 하며, 일을 하며, 놀고 먹고 마시며 있는 힘껏 세상을 누린다. 그럼에도 조르바에게 세상은 매번 새롭고 벅찬 것이어서 그것을, 이를테면 밤하늘이나 바다, 석양을 볼 때마다 외친다. "저것 보십시오, 두목. 저게 대체 무엇입니까?"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는 자유롭지만 세상을 존경하고 배려할 줄 안다.
'나'에게 있어 그런 조르바는 진정한 의미의 진리, 혹은 신이었을까 싶다. 진리를 향한 미로를 헤매던 금욕주의자이자 철학자인 '나'는 무언가 불합리함을 느끼곤 했다. 진리를 좇는 삶 속에는 삶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활동하고 싶었고, 생명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 그에게 조르바는 세상의 경이로움을, 감정의 아름다움을, 욕구의 담백함을 보여주었다. 이제서야 비워 내려 애쓰던 삶이 가득 채워졌다. 부처는 삶이 아닌 완결이고, 마지막 인간이었다. 그는 완결짓지 않은 채 살아야 했다. 방황하고 고뇌하던 영혼은 못내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이며, 신이 아니다. '나'는 끝내 조르바 속에서 자유를 얻지 못하고 방황을 택한다. 마치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가듯, 그 역시 영혼 한 켠에 삶에 대한 동경을 품고 진리를 찾아 나선다. 조르바는 끝까지 세상을 갈망하며, 하늘에 얼굴을 박은 채 활짝 웃으며 죽음을 맞는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을 때면 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 꿈은 책, 혹은 조르바의 세상이 아름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그 충만한 삶이 멀게만 느껴져서이기도 하다. 매번 조르바를 보며 경탄하던 '나'의 기분이 꼭 그랬을 것만 같다. 자유로운 조르바의 세상을 보고 있자면 숨이 부풀어오르는 듯 하다가도, 다시금 나의 세상의 압력을 느끼며 초라해지고는 하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나의 세상이 잡아먹히는 게 두려워 조르바를 떠나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필경 그 곳에서 진리를 찾지 못했으리라.
그럼에도 그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정말 값지고 아름다운 경험이다. 조르바는 늘 삶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는 듯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비춰 주고, 온 영혼을 다 바쳐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보여 준다.
E.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