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장치
우리들이 좇고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들 - 명예, 믿음, 종교, 사회적 규칙 - 은 죽음이라는 단순한 조건 아래 한갖 무대장치에 불과하다. 그것들은 곧 사라져버릴, 인위적인, 상대적인, 그다지 중요할 것 없는 허상일 뿐이다. 하지만 선택은 실재한다. 무엇을 먹을 것이냐, 무엇이 더 가치있느냐 따위의 문제들은 실로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그르니에는 고양이 물루를 부러워한다. 물루는 스스로의 행동을 의심하지 않는다. 의미부여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의 행동에, 그리고 행동의 연속인 삶에 몰두할 뿐이다. 물루의 삶에는 무대 장치가 없다.
"물루는 행복하다. 세계가 저 혼자서 끝없이 벌이는 싸움에 끼여들면서도 그는 제 행동의 동기가 한갖 환상일 뿐임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매순간 그는 제 행동 속에 흠뻑 몰두해 있다. … 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노라면 이런 가득함은 나를 슬프게 한다. 나는 내가 인간이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섬
혼자씩일 뿐인 인간들. 무대 장치가 배제된 인간의 삶은 섬이다. 인간은 오롯이 그 자체로서 존재해야 한다. 케르겔렌 군도에 대한 감상은 이를 완벽히 묘사한다.
"케르겔렌 군도는 선박이 다니는 일체의 항로 밖에 위치하고 있는데… 약 삼백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해안에는 흔히 안개가 끼어 있으며 그 주위에는 위험한 암초들이 둘러싸고 있으므로 그곳에 접근하는 선박들은 극도로 경계한다… 그 고장의 내부는 완전히 황폐하고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섬으로!
무대 장치가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파리의 이름 모를 카페에서 허송하는 것, 담장 너머의 꽃향기, 여행을 통한 자기 인식, 힌두교식 명상을 통한 '무'와 '진아'의 깨달음…
어쨌거나 그것은 역시 '섬' 안에 있을 것이었다.
내가 어떤 글을 쓰더라도, 감히 그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전달하진 못할 것 같다. 그저 다시금 다시금 꺼내 읽을 수밖에…
+) 이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비정상이 아니다. 독후감을 쓰고자 마음먹을 때까지 처음부터 세 번을 다시 읽었다.
E.O.D.